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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시계가 걸려있는 간이 역

겸둥이 김정겸 2023. 7. 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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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소나무

 

간이역도 역이다. 다만 부정기적인 곳이다. 늘 같은 시간에 정차하여 사람을 토해놓는 정규 역과는 달리 비정규직의 힘든 삶을 달래줄 수 있는 곳 같은 아늑한 곳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일직선으로 놓여진 길을 정해진 시간에 달리는 증기기관처럼 인생이라는 정해진 레일(rail)위로 씩씩거리며 달려온, 그래서 정확하게 짜여진 마스터플랜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 이제 한번쯤은 오랜 세월을 잘 버텨온, 그러나 녹이 슬어 한쪽 구석에서 쉬고 있는 고장 난 시계가 되어 보고 싶고 인적이 드문 간이역에서 정차하여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바라보고 싶다.

 

철길은 도착점이 있다. 우리 인생도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 장군(將軍)처럼 굿굿하게 앞을 향해 나간다. 그러나 가끔은 간이역에 하차하여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간이역이 나의 삶 한편을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간이역

 

간이역이 가져다주는 한가로운,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정서적인 이미지로 나의 피곤한 삶을 한번쯤은 포장해서 감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 그 소나무가 곧은 것이 아니라 모든 세파를 이겨낸 그래서 등이 굽구 가지가 쳐진 한구루가 있는 간이역이면 좋겠다. 또 내가 좋아하는 노란 국화가 소담히 피어있는 그런 간이역이면 더욱 좋겠다. 이래서 더욱 쓸쓸히 보일 수 있고 느낄 수 있겠지만 힘든 나의 영혼을 달래어 주는 어머니 자궁과 젖무덤 같아서 좋다. 그 안에서 내 영혼을 달래어 보고 싶다. 간이역에 외로이 켜있는 백열 전구는 화려한 조명은 아니지만 나의 지친 영혼에 뜨거운 키스로 애무해 줄 것 같아 사랑스럽다.

 

인생의 출발점이야 누구나 축복받고 환영받는 역이지만 긴 인생의 여정에 힘들고 외로울 때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이 중간에 있었으면 좋겠다. 종착점은 없어도 좋다. 종착점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기에 싫다. 내려놓아야 할 인연이 있다면 내려놓는 게 싫어서 그 인연이 그립고, 그 인연과의 사랑이 그립기 때문에 종착역을 떠올리는 것이 싫다.

 

간이역은 고장 난 시계와 같은 곳이다. 고장난 시계는 제 멋대로 이어서 좋다. 시간이 맞지않는 고장난 시계는 나보고 잠시 삶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눈 찡끗의 표시이고, 시간이 멈춘 고장난 시계는 고된 삶에 약간의 호사를 부려보는 쉼을 주려는 눈 찡끗이기에, 그래서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간이역의 고장난 시계가 부럽다.

 

인생이 가끔은 고장난 시계가 될 필요도 있다. 매일의 짜 맞추어진 일과에서 우린 시간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계획되어 진 일을 마치면 축 처친 시계추가 되어 쉴 곳을 찾아 헤메이는 비맞은 생쥐가 된다. 그 쉴 곳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영혼의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시계 속에 있는 숫자는 마법적 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멍청하게 만드는 요물이다. 몇 시 몇 분은 정확하고 똑똑하게 보이게는 하겠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보면 숫자의 노예이라는 것이다. 너무 무 계흭적이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난 나의 영혼을 치료받고 싶은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괴물에서 벋어나 나로 살아가고 싶다. 그 누구의 소속 물이 아닌 그래서 내가 더 자유로운 나로 살고 싶다. 정확히 잘 맞어 떨어지는 시계는 머리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고장 난 시계는 가슴을 울려주는 영혼의 울림 이다. 쓸쓸하고 슬퍼진 영혼을 가슴으로 위로해줄 필요가 있다. 누가 내 구멍 난 가슴을 채워줄 수 없나요. 누가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간이역이 되어줄 수 없나요.

 

이제 더 이상 시계 알람을 맞추어 놓지 말자. 그 소리에 내가 구속되고 그에 맞추어 허둥되고 싶지는 않다. 헝클어진 머리면 어떻고 찢어진 바지면 어떻고 민낯이면 어떤가? 잘 짜여진 그래서 남에게 좋게 보여 지는 쇼 윈도우(show window)의 삶이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잘 짜여진 삶을 살았다고 잘 차려진 정찬을 먹었다고 성공적인 삶은 아니다. 가끔은 그 잘 짜여진 것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잠시 고장난 시계가 걸려있는 간이역에서 우리를 차갑게 인도하는 머리로 부터 벗어나 가슴을 뜨겁게 하자. 차가운 냉혈한은 싫다. 왜냐하면 피가 뜨거우면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언제인가는 뛰는 가슴을 보듬어줄 영혼의 안식처 간이역을 기대하며 오늘도 영혼의 알람에 내 몸을 맞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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